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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꿈이 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이야기할 때도 꿈이 있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이루지 못할 목표를 가지고도 “나는 꿈이 있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꿈은 너무도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담기도 하고, 이루지 못할 것에 다가가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본인이 느끼기에 꿈은 이루기 힘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한 글자로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느껴온 꿈만해도 그렇다. 나는 항상 이루지 못할 꿈을 꾸었다. 내가 꾼 꿈은 항상 늦었고 이루기에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꿈을 꾸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하지만 이루기엔 늦은 꿈들이 몇 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 더보기
가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모습의 가면을 꺼내든다. 사회에서는 직장에 맞는 가면을, 가정에서는 때로는 철없는 자녀의 모습의가면, 때로는 부모님이라는 모습의 가면, 또 친구들과는 그 시절에 맞는 가면을 꺼내어 쓰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의 가면을 바꾸어 쓴다. 하지만 우리는 가면을 돌려쓰느라 가면 뒤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잘 마주하지 못한다. 우리는 익숙해져 있는 가면 뒤에 숨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가면 뒤에 있는 모습을 아는 이는 얼마 없다.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마다 가면을 바꾸어 쓰며 살아가다 가면에 숨이 막혀 가면 쓰기를 내려놓는 날이면 그제야 가면 뒤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더보기
기다림 “기다림의 미덕”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기다리는 일을 미덕처럼 여긴다. 기다리는 것보다 다가가는 것이 만날 확률도, 마주할 확률도 많음에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만나지 못했던 인연들이 너무도 많다. 물론 둘 모두가 다가간다면 길을 엇갈릴 확률이 부단히도 높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고, 한 방향으로 들어서는 순간 다른 길은 생각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다림을 미덕을 생각하는 우리의 길이 엇갈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누군가 다가가는 것이 둘 모두 기다리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다. 누군가는 다가가다 만날 수도 있을 기회를 누군가는 바라만 보다가 끝내기도 한다. 나는 다가가기보다는 항상 기다리는 편이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괜히 다가갔다가 스쳐 지나갈 존재로 남을 것 같아서... 더보기
잠식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우리도 그 시간에 맞게 흘러간다. 과거는 머물러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에 잠식된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에 잠식된다. 또 그렇게 다가올 미래를 놓치기도 한다. 현재를 갉아먹는 과거라는 누에 한 마리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먹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과거를 살기도 하고, 미래를 살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은 참으로 애틋한 것 같다. 분명 과거에 있는 일이 지금 눈에 아른거리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기도 하고, 과거에 바랐던 꿈을 현재의 내가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 세 종류의 사람 중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을지. 첫째,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 둘째, 찬.. 더보기
여유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또 이런 말이 있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때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다. 뜻이 다른 만큼 두 이야기의 쓰임새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을까.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다다익선이라는 말을 사용한 때가 더 많았다. 누군가가 ‘그렇게 많이 담아서 뭐해?’라고 이야기할 때에 나는 ‘많이 쟁여두면 좋지.’라는 대답으로 정당화했고, ‘그렇게 많이 먹어도 돼?’라는 나를 걱정하는 말을 ‘이럴 때나 이렇게 많이 먹어보지 언제 또 이렇게 먹겠어.’라는 대답으로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에 대한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렇게 많이 담았던 나의 장.. 더보기
자존심 버렸던 것들이 기어올라오는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쓰레기통에 버려둔 쓰레기에서 올라오는 악취, 잡아서 버린 줄 알았던 벌레, 그리곤 어딘가에 버려두고 기억하지 못하다가 한 번씩 치고 올라오는 우리의 자존심. 우리는 20대에 세상에 던져지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또 많은 것들을 얻는다.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버린다. 그 세상에 내던져짐과 동시에, ‘나’이기를 포기한다. ‘나’이기를 포기한 우리에게는 주어지는 것이 있다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다. 때로는 학교에서 세상이 이런 곳이라는 것을 한 번쯤은 몸소 체험하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랬더라면 학교에서 품게 했던 희망을 조금 미리 내려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나를 잃어간다. 평상시에는 나를 잃어가.. 더보기
상황 사람마다 처한 상황들이 다르기 마련이다. 우리가 마주했던 태풍 마이삭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의 어느 곳에는 그저 비만 오다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이름일지 모른다. 하지만 부산의 어딘가에서는 신호등이 돌아가고, 제주도의 어딘가에서는 1000mm가 넘는 비의 양을 내리기도 하고, 또 어딘가에서는 다가올 태풍을 준비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한 나라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으로 많은 것들을 해석한다. 서울에 있는 누군가는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며 흘려 넘길지 모른다. 하지만 1000mm가 넘는 비를 뿌리고 간 흔적을 치우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또 눈앞에서 신호등이 돌아가 쓰러져 버리는 것은 본 사람은, 그런 무서운 태풍의 예상 경로 위에 위치해 있는 사람은 어.. 더보기
인사 누구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누군가는 그 인사를 받는다. 또 누군가는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참, 이상한 표현이다. “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는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보면 인사를 해야 한다고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가르쳤던 사람들도 어디선가는 자신들의 말처럼 인사를 하고, 또 어디선가는 인사를 받고 있다. 이야기 초반에 말했듯이 그 관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우리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될 때가 있다. 그때의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에휴, 저 사람은 자존심도 없네.” 이것도 이상한 점 중 하나이다. 누군가의 인사를 고개 숙이는 사람의 자존심의 정도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그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누가 그런 것을 심어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