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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괜찮아요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람에게 . “괜찮아요?” . 라고 물어보면 모두들 이렇게 대답한다. . “괜찮아요.” . 사실 물어보는 사람도 알고 있다. 정말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괜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한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에 나도 포함될 것 같다. 괜찮냐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대답했기에. . 어떻게 보면 괜찮다는 말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정말 괜찮다는 뜻일지도 모르고, 말할 기분이 아니라는 표현일지도 모르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기에. . 괜찮다는 말에는 무수히 많은 뜻을 담고 있다. . 괜찮아요 ─ 괜찮다고 하지 마요. 안 괜찮은 거 다 알아요. 괜찮다고 한 사람 중에 정말 괜찮은 사람 없거든요. 더보기
회상 인생을 살다 보면 문득 과거의 일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과거의 일들은 대개 좋았을 적에 일이다. 그런데 그런 과거의 일들이 자주 떠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행복 안에서 살고 있다면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도 벅찬데, 과거의 일까지 회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대한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는 건 지금 현재의 힘든 삶, 견뎌내기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 떠올릴, 회상할 과거가 있다는 점이다. 과거를 잘 살아왔기에, 행복했기에, 떠올릴 추억이 있는 것이 아닐까. 힘든 지금 이 순간에 과거처럼만 다시 살아낸다면 미래에 언젠간 오늘을 과거로 회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회상 ─ 과거에 대한 생각이 자주 날수록 지금이 힘들다는.. 더보기
두 개의 귀 살아가다 보면 하소연을 들을 일이 참 많다.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을 때면 드는 생각 중 하나는, 말하는 사람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또 하소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말이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이러한 순간들에서 섣부른 판단을 한다면 어느 한 쪽과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겐 두 개의 귀가 있다. 한 쪽으로 듣고 한 쪽으로 흘리기도 하고,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에는 닫아버릴 수 있는 귀 말이다. 어느 날, “우리에게 왜 귀가 두 개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 한 쪽만 듣고 판단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의견을 다 들어보고 판단하라고,.. 더보기
하고 싶던 일 하고 싶었던 일이 절실하게 밀려오는 밤이 있다. 그 밤은 잠을 못 이루게 만들기도 하고, 그날의 추억에 잠겨 헤어 나올 수 없는 시간으로 그 밤을 점철시키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게도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또 누구나 그렇듯이 나는 그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나 같은 레퍼토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한 편의 이야기 정도로 끝날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그 어떤 일보다도 절실했고, 그 누구보다도 절실히 바랐던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과거로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이유는 이제는 그토록 간절할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것을 도전하기엔 나이도 들었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는 삶에 불안정성을 끼얹는 격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대로의 삶을 산다면 그 삶의 끝이.. 더보기
잠식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우리도 그 시간에 맞게 흘러간다. 과거는 머물러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에 잠식된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에 잠식된다. 또 그렇게 다가올 미래를 놓치기도 한다. 현재를 갉아먹는 과거라는 누에 한 마리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먹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과거를 살기도 하고, 미래를 살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은 참으로 애틋한 것 같다. 분명 과거에 있는 일이 지금 눈에 아른거리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기도 하고, 과거에 바랐던 꿈을 현재의 내가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 세 종류의 사람 중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을지. 첫째,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 둘째, 찬.. 더보기
여유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또 이런 말이 있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때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다. 뜻이 다른 만큼 두 이야기의 쓰임새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을까.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다다익선이라는 말을 사용한 때가 더 많았다. 누군가가 ‘그렇게 많이 담아서 뭐해?’라고 이야기할 때에 나는 ‘많이 쟁여두면 좋지.’라는 대답으로 정당화했고, ‘그렇게 많이 먹어도 돼?’라는 나를 걱정하는 말을 ‘이럴 때나 이렇게 많이 먹어보지 언제 또 이렇게 먹겠어.’라는 대답으로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에 대한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렇게 많이 담았던 나의 장.. 더보기
확신 우리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맡을 수밖에 없는 역할들이 있다. 학교를 예로 든다면 크게 선생님과 학생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직장을 예로 들면 수많은 상사, 또는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상사인 본인, 가장 아래에서 이리저리 굴러가며 일하고 있는 본인이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통틀어 ‘일’이라고 칭하겠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한다. 선생님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또 다른 업무들을.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많은 이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일 것이다. 또한 직장에 있는 수많은 상사들은 자신이 그 위치에 대한 책임을 지며, 각자의 일들을 처리한다.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상사는 내려올까, 걱정하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