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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또 이런 말이 있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때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다. 뜻이 다른 만큼 두 이야기의 쓰임새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을까.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다다익선이라는 말을 사용한 때가 더 많았다.

 

누군가가 그렇게 많이 담아서 뭐해?’라고 이야기할 때에 나는 많이 쟁여두면 좋지.’라는 대답으로 정당화했고, ‘그렇게 많이 먹어도 돼?’라는 나를 걱정하는 말을 이럴 때나 이렇게 많이 먹어보지 언제 또 이렇게 먹겠어.’라는 대답으로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에 대한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렇게 많이 담았던 나의 장바구니는 옆구리가 터져버려 담았던 것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또한 걱정이 무색하게 배로 밀어 넣었던 음식은 독이 되어 나를 아프게 했다. 내가 했던 선택에 대한 그 결과를 고스란히 내가 짊어져야 했다.

 

그 후 나는 이렇게 변화했다. 더 담을 수 있어도 조금은 여유를 남겨두게 되었다. 그래야 더 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담을 수 있었고, 들고 급히 몸을 옮겨도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밀어 넣기만 했던 음식들을 이제는 종류별로 조금씩만 먹어보게 되었다. 맛을 보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지 목에 차오를 때까지 밀어 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목이 차오를 때까지 입에 넣어서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아쉬움을 걷어낼 수 있었고, 실제로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바로 먹어볼 수 있었다.

 

우리는 비워져 있는 것을 채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 욕구가 무색하게 그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무턱대고 그 빈자리를 채우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남겨둔 이유를 먼저 알아봤으면 좋겠다.

 

 

 

 

 

남의 그릇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그릇을 꽉 채우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도 조금의 여유를 남겨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꽉 채웠던 내가 그릇을 옮기며 흘린 그 물들을

아쉬워하는 마음 같은 것들

여유,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