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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기다림의 미덕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기다리는 일을 미덕처럼 여긴다. 기다리는 것보다 다가가는 것이 만날 확률도, 마주할 확률도 많음에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만나지 못했던 인연들이 너무도 많다. 물론 둘 모두가 다가간다면 길을 엇갈릴 확률이 부단히도 높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고, 한 방향으로 들어서는 순간 다른 길은 생각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다림을 미덕을 생각하는 우리의 길이 엇갈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누군가 다가가는 것이 둘 모두 기다리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다.

 

누군가는 다가가다 만날 수도 있을 기회를 누군가는 바라만 보다가 끝내기도 한다.

 

나는 다가가기보다는 항상 기다리는 편이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괜히 다가갔다가 스쳐 지나갈 존재로 남을 것 같아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다가간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들도 다가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다가가지 않으면 둘 모두 가까워질 기회조차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네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언인지 너의 시선의 끝에 나의 시선을 두기도 했고, 그곳을 바라보는 너의 모습이 아름다워 너에게 시선을 두기도 했다.

 

혹여나 네가 바라보고 있던 곳에서 시선을 돌려 나를 향하면 나는 어김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곳이 네가 바라보고 있었던 곳이든, 아니면 전혀 다른 곳이든.

 

나는 내가 네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되었다.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들켜야 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정도를 인식시켜 줄 수 있었을 테니.

 

그랬던 나였기에 마주하고 싶어도 마주할 수 없었고, 마주치고 싶어도 마주칠 수 없었다. 항상 둘 중 누군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익숙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너의 모습은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해도, 멀리로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은 네가 어느 곳에 있든, 시야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거리에 있든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무 슬펐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익숙하다는 것이. 다가오는 것보다 멀어져 가는 것이 익숙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로의 시선을 피했던 시간을 누군가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또 누군가는 운명의 장난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 부족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기다림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네게 했던 그 행동들을 또 누군가는 나를 바라보며 행했겠지.

 

 

 

 

 

하염이 없었다

너와 나 사이에는

 

항상 누군가는 뒤돌았고

항상 누군가는 뒷모습이었다.

마주하고 싶어도 마주할 수 없었고

마주치고 싶어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랬던 순간을 누군가는 타이밍이라고

또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 부족했다는 것을.

 

우린

그 한 번 뒤돌기가

그 한 번 마주하기가

그리도 어려웠다.

기다림,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