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최선 야구를 보면서 미련해 보이는 행동이 있다. 땅볼을 치고도 1루까지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다. 많은 이들은 그 행동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아니, 어차피 죽은 거 뭘 저렇게 열심히 뛰어?” 하지만 야구를 했었던 나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타자가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할 때, 보통 선수들은 4초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바꾸어 말하면, 그라운드에 있는 수비수는 그 짧은 시간 내에 공을 포구해서 1루에 송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1루에 공이 4초 내에 도착해 있어야 아웃 판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땅볼을 치고도 설렁설렁 뛴다면 어떻겠는가. 수비수는 급박한 느낌 없이 편안하게 공을 처리할 것이다. 반면 죽기 살기로 1루까지 뛰어 전력 질주를 하는 사람을 본 수비수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수비수의 .. 더보기
절실함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이야기한다. “절실함의 정도가 성공의 여부를 좌우한다.” 아마 절실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절실함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 대표 축구 선수로 선출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예산이 부족했는지 축구 유니폼을 주전들에게만 지급했다. 아니 어쩌면 돌려 입는 유니폼이었기에 주전들이 입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유니폼 관리는 당연히 주전들이 했다. 때는 시합 도중이었다. 전반전이 채 중반을 흘러가기도 전에 감독님은 선수 한 명을 불러들였다. 교체 사인이었다. 그 주전이 경기 당일 폼이 너무도 떨어졌던 까닭이다. 감독님은 나를 준비시켰다. 당연히 여벌 옷이 한 벌도 없었던 당시 상황으로선 미리 몸만 풀고 있다가 선수가 .. 더보기
우리는 미련함을 어리석음에 비유하곤 한다. “와 저 사람 진짜 미련하다. 어떻게 저걸 저렇게까지 하고 있지?” 이 한마디에는 그 대상이 어리석었음을 일컫는 뉘앙스가 스며들어 있다. 이것은 비단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련”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봐도 그러하다.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릴 정도로 매우 어리석고 둔함” “미련”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단 한 번도 찾아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연중에 사전의 의미대로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은 다르다. 미련함이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전적 의미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이렇다. “터무니없는 고집” “어리석음” “둔함” 한 문장에 좋지 않은 단어가 3번이나 들어간다. 단 한 문장에 말이다. 이 정도로 미련에 .. 더보기
품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품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위치에 있으려는 마음 또한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무엇 하나라도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런데, 품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품으려는 상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 품으려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게 됨을 느끼는 경우 등 다양한 경우가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품으려는 상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 품으려는 사람이 그 사람의 앞에서 작아짐을 느끼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품을 수 없다.” “절대로 작은 물통은 많은 물을 담아낼 수 없다.” .. 더보기
표정 잊고 있던 옛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분명 그때의 기억은 좋은 기억이 아니었는데,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그리곤 사진첩에 있던 사진을 둘러보았다. 카메라를 인식하고 찍은 거의 모든 사진 안의 나는 웃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추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살다 보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일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좋지 않은 시간들로 보냈다면, 좋지 않은 표정들로만 그 시간들을 채워간다면 우리네 삶은 어떠했을까. 그만큼이나 비참한 삶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흐르고 있는 수도꼭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행동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힘든 시간들이더라도 우리가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작은 부분이자, 큰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있다.. 더보기
무너지다 유독 사람이 힘들 때, 자신이 쌓아왔던 것을 잃었을 때,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있다. 바로 “무너지다”이다. 무너진다는 표현은 대개 건물이나 사물에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때로는 사물에 사람을 빗대어 설명하는 의인화의 작업과 같이, 사람을 사물에 비유한 것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전은 다르게 설명한다. “몸이 힘을 잃고 쓰러지거나 밑바닥으로 내려앉다." 이것 말고도 “무너지다”에 대한 정의가 많이 있지만 보통 생각하는 정의는 없었다. "건물이나, 탑 따위가 아스러져 내려앉다“ 되려 사전은 사람에 대한 “무너지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정의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건물이 무너지는 경우보다 사람이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느 쪽이든 무너진다는 것은.. 더보기
길을 잃다 우리는 항상 길 위에 놓여 있다. 그 길은 평탄한 길일 수도, 높은 경사가 진 오르막일 수도,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일 수도, 때로는 아무 이정표가 없는 광야와 같은 황무지일 수도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많은 선택과 좌절을 경험한다. 분명 좋은 선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잘 기억나지 않는 까닭은 좋지 못했던 선택들이 더 많았을뿐더러, 그 선택들이 우리의 기억을 더 오래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느낀 길은 이러했다. 한 번 그 길로 발을 내디디면, 돌이킬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선택이라는 단어인지 모르겠다. 그 길로 들어서면 필히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마치 후진이 되지 않는 차처럼, 멈추어 있거나, 앞으로 나가는 방법 둘 중 하나였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더보기
운명 거리를 거닐다 보면 수많은 순간들을 마주한다. 정신없이 뛰어가는 누군가에 시선을 두고 있노라면, 대개 그들이 원하는 곳까지 시선이 머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멈춰 선 순간을 마주하곤 하는데, 그곳은 신호등 앞이었다. 또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버스를 따라 뛰어가는 이를 마주할 때가 있다. 어릴 적의 나는 재미로 경쟁심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마치, 이 버스를 놓치면 다음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표정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그 버스가 막차였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표정에 우러나오는 감정은 절실했다. 이런 순간들을 남녀 관계에 대입시켜 보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과 선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