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길 위에 놓여 있다. 그 길은 평탄한 길일 수도, 높은 경사가 진 오르막일 수도,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일 수도, 때로는 아무 이정표가 없는 광야와 같은 황무지일 수도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많은 선택과 좌절을 경험한다. 분명 좋은 선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잘 기억나지 않는 까닭은 좋지 못했던 선택들이 더 많았을뿐더러, 그 선택들이 우리의 기억을 더 오래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느낀 길은 이러했다.
한 번 그 길로 발을 내디디면, 돌이킬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선택이라는 단어인지 모르겠다.
그 길로 들어서면 필히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마치 후진이 되지 않는 차처럼, 멈추어 있거나, 앞으로 나가는 방법 둘 중 하나였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차를 돌려서 돌이키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기엔 길이 너무 좁았다. 딱, 차 한 대가 통과할 수 있는 정도 밖에는 그 넓이가 되지 않았다.
멈추어 있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뒤에 따라오는 차에 등쌀에 밀려, 또 앞차와 멀어진다는 생각에 쉬이 멈추어 있을 수도 없었다.
단지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일 차선이라 뒤로 가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 많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그 길을 돌이키려는 상상을 달고 왔다. 그래서 고마웠고, 그래서 아팠다.
단지,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후진을 하지 못해, 뒤차에 등쌀에 밀려, 또 앞과 멀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게 한 번 잘못 든 길은 앞으로 가야만 돌이킬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길들을 헤매며 깨달은 것이 있다. 아니 어쩌면 헤매었다는 표현보다는 그 길 위에서 깨달은 것일지 모른다. 헤맨 것은 그 길 위에 있는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길 위에서 깨닫게 된 것은 길은 어디로든 통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길을 찾는 것은 시간과 연료의 차이일 뿐이다. 약속시간에 맞게 도착하느냐, 또는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느냐.
우리가 길을 찾아서 도착하더라도 그것을 이룰 타이밍이 지나면 소용이 없다. 또한 우리에게 할당된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는지,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연료를 관리하는 법은 또한 까다롭기 그지없는데,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가지 않으면, 도착점에 이르기 전에 필히 연료가 바닥나고 만다. 다른 차의 속도에 맞추면 더욱이 그렇다.
우리는 항상 그 길들 위에 서 있다.
다만, 어디로든 통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인지, 그 길 위에서 퍼져 레커차에 실려 갈 것인지는 본인의 몫이다.
한 번 잘못 든 길은
헤쳐 나오기 어려웠다
마치 후진 기능이 없는 차처럼
또 후진할 공간이 없는 일 차선의 도로처럼
단지 앞만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후진을 하지 못해
또 뒤차의 등쌀에 밀려
한번 잘못 든 길은
꼭 앞으로 가야만 돌이킬 수 있었다
길은 어디로든 통한다
다만, 그 시간과 연료의 차이일 뿐이다
약속시간에 맞게 도착하느냐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느냐
길을 잃다,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