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품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위치에 있으려는 마음 또한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무엇 하나라도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런데, 품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품으려는 상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 품으려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게 됨을 느끼는 경우 등 다양한 경우가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품으려는 상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 품으려는 사람이 그 사람의 앞에서 작아짐을 느끼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품을 수 없다.”
“절대로 작은 물통은 많은 물을 담아낼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좋아하는 사람을 품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작은 물통은 많은 양의 물을 담아낼 수 없다.
하지만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떠받들 수 있다.
작은 물통은 많은 양의 물을 담아낼 수는 없지만, 많은 양의 물을 그 크기만큼 적절히 담아낼 수 있다.
즉, 이토록 각자의 쓰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 우리가 모든 것을 품어야 하는 것 또한 아니다.
때로는 그 사람에게 우리가 떠받들어주어야 하는 존재로 필요할 수도 있고, 그가 받은 많은 양의 상처들을 적절히 흘려보내주어 꼭 필요한 것들만 담아내는 작은 물통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는 억지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행동을 하려고 하기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그 사람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품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품는다는 뜻 자체에 그런 뜻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마음속에 가지다.”
즉,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가장 먼저 마음으로 품는 것이다.
우린 어쩌면 누군가를 억지로까지 품으려고 하기보다는 마음속에 품은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관계가 있지 않을까.
품을 수 없는 사람을
품으려 했다.
그게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품다,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