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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야구를 보면서 미련해 보이는 행동이 있다. 땅볼을 치고도 1루까지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다. 많은 이들은 그 행동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아니, 어차피 죽은 거 뭘 저렇게 열심히 뛰어?” 하지만 야구를 했었던 나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타자가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할 때, 보통 선수들은 4초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바꾸어 말하면, 그라운드에 있는 수비수는 그 짧은 시간 내에 공을 포구해서 1루에 송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1루에 공이 4초 내에 도착해 있어야 아웃 판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땅볼을 치고도 설렁설렁 뛴다면 어떻겠는가. 수비수는 급박한 느낌 없이 편안하게 공을 처리할 것이다. 반면 죽기 살기로 1루까지 뛰어 전력 질주를 하는 사람을 본 수비수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수비수의 .. 더보기
마지막 이상하게도 들으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마지막”이라는 단어다. 얼마의 시간을 우리가 마지막이라는 단어로 한정하든 그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애틋함을 불러 일으킨다. 순전히 그것이 지금까지의 일들을 마무리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말이다. 그것은 아마, 지난날에 대한 생각들이 뒤죽박죽 엉킨, 우리의 마음이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든, 조금은 좋은 기억으로 미화시키고 싶은,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는 마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마지막 발악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을 맞이하기 전, 책상은 다 정리가 되었어도, 머릿속으로 생각은 다 정리가 되었어도, 잘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이다. 하지만 어떤 마지막은 후련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대개 그런 마지막은 .. 더보기
거짓말 당장을 살기 위해 다가올 미래를 희생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이 있다. 바로, “거짓말”이다. 우리는 보통 현재를 팔아 미래를 살아가곤 한다. 어쩌면 이 표현에 분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현재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만 우리의 현재를 받쳐서 미래가 다가온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은 슬프게 다가온다. 현재를 팔아 미래를 살면 우리의 시간은 그 어디에 있는 것인가. 과연 우리는 어느 시간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조금 슬프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임은 자명하다. 그런 우리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것이 거짓말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거짓을 말하는가. 보통 거짓말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처했을 때,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상황에서 많이 사용한다. 즉, 거짓말은 .. 더보기
스포트라이트 한 번은 공연 리허설을 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 위에는 요즘 흔히들 말하는 조명, 온도, 습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던 장치는 조명을 담당하고 있는 스포트라이트였다. 어쩌면 눈에 띄었다기 보다 눈을 부시게 해서 눈길이 그쪽으로 향했던 것 같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는 특정한 부분을 중심해서 보여주거나 특정한 인물을 집중시켜줄 때, 자주 사용된다. 나의 배역 중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이 있었다. 주위가 모두 암전 되어 어두운 가운데 홀로 등장해서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는 씬이었다. 그때의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어딜 가는 쫓아왔고, 어두운 밤중에 나와 그 둘 밖에 없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공연을 잘 마치고 공연을 했었다는 기억마저 잊히고 있을 어느.. 더보기
명확치 않은 날씨 명확하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이다 비가 오는 것도, 그렇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닌 날씨. 밝지도, 그렇다고 밤처럼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그런 날씨. 해가 뜨는 것도, 그렇다고 구름이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닌 날씨가,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폭우와 폭염 사이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내겐 도움이었다. 그들은 도움을 청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이 없는 내게는 그들이 도움이었다.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너무도 많은 감정이 마음에 드리운다.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 것 같은 폭우.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워지게 만드는 폭염. 젖어가는 마음이 마를 새 없이 그 무게를 더해가는 장마. 마음에는 더없이 소중한 날들인 맑은 날. 적당한 수분으로 메말랐던 우리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 더보기
과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이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했다는 말도, 윈스턴 처칠이 했다는 설도 있다. 누가 말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의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것은 현대가 삭막해졌음을 느끼기 때문일 수도, 그만큼 삭막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인지도 모른다. “아,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마.” “다 지난 걸 가지고 아직도 그러면 어떡하니?” 하지만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즉,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잊지 말자는 취지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좋은 일이었든, 그렇지 않았.. 더보기
안부 목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가 차오르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습관처럼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오늘 힘들지는 않았어?” “그때 말한 그건 조금 괜찮아졌어?” 목 끝까지 차오른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또 누군가 너무도 버거워 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럴 때면 우리는 목 끝까지 차올랐던 이야기들을 뒤로 한 채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들어준다. 우리 자신의 아픔을 뒤로한 채 말이다. 안부를 물을 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그 희생은 목 끝까지 차오른 우리네 이야기를 잠시 머금게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 안에 담는다. 털어놓기도 바쁜 순간에 우리는 그 이야기들까지 흡수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그거 들어주는 게 뭐.. 더보기
절실함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이야기한다. “절실함의 정도가 성공의 여부를 좌우한다.” 아마 절실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절실함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 대표 축구 선수로 선출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예산이 부족했는지 축구 유니폼을 주전들에게만 지급했다. 아니 어쩌면 돌려 입는 유니폼이었기에 주전들이 입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유니폼 관리는 당연히 주전들이 했다. 때는 시합 도중이었다. 전반전이 채 중반을 흘러가기도 전에 감독님은 선수 한 명을 불러들였다. 교체 사인이었다. 그 주전이 경기 당일 폼이 너무도 떨어졌던 까닭이다. 감독님은 나를 준비시켰다. 당연히 여벌 옷이 한 벌도 없었던 당시 상황으로선 미리 몸만 풀고 있다가 선수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