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잠식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우리도 그 시간에 맞게 흘러간다. 과거는 머물러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에 잠식된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에 잠식된다. 또 그렇게 다가올 미래를 놓치기도 한다. 현재를 갉아먹는 과거라는 누에 한 마리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먹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과거를 살기도 하고, 미래를 살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은 참으로 애틋한 것 같다. 분명 과거에 있는 일이 지금 눈에 아른거리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기도 하고, 과거에 바랐던 꿈을 현재의 내가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 세 종류의 사람 중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을지. 첫째,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 둘째, 찬.. 더보기
여유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또 이런 말이 있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때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다. 뜻이 다른 만큼 두 이야기의 쓰임새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을까.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다다익선이라는 말을 사용한 때가 더 많았다. 누군가가 ‘그렇게 많이 담아서 뭐해?’라고 이야기할 때에 나는 ‘많이 쟁여두면 좋지.’라는 대답으로 정당화했고, ‘그렇게 많이 먹어도 돼?’라는 나를 걱정하는 말을 ‘이럴 때나 이렇게 많이 먹어보지 언제 또 이렇게 먹겠어.’라는 대답으로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에 대한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렇게 많이 담았던 나의 장.. 더보기
자존심 버렸던 것들이 기어올라오는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쓰레기통에 버려둔 쓰레기에서 올라오는 악취, 잡아서 버린 줄 알았던 벌레, 그리곤 어딘가에 버려두고 기억하지 못하다가 한 번씩 치고 올라오는 우리의 자존심. 우리는 20대에 세상에 던져지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또 많은 것들을 얻는다.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버린다. 그 세상에 내던져짐과 동시에, ‘나’이기를 포기한다. ‘나’이기를 포기한 우리에게는 주어지는 것이 있다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다. 때로는 학교에서 세상이 이런 곳이라는 것을 한 번쯤은 몸소 체험하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랬더라면 학교에서 품게 했던 희망을 조금 미리 내려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나를 잃어간다. 평상시에는 나를 잃어가.. 더보기
상황 사람마다 처한 상황들이 다르기 마련이다. 우리가 마주했던 태풍 마이삭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의 어느 곳에는 그저 비만 오다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이름일지 모른다. 하지만 부산의 어딘가에서는 신호등이 돌아가고, 제주도의 어딘가에서는 1000mm가 넘는 비의 양을 내리기도 하고, 또 어딘가에서는 다가올 태풍을 준비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한 나라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으로 많은 것들을 해석한다. 서울에 있는 누군가는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며 흘려 넘길지 모른다. 하지만 1000mm가 넘는 비를 뿌리고 간 흔적을 치우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또 눈앞에서 신호등이 돌아가 쓰러져 버리는 것은 본 사람은, 그런 무서운 태풍의 예상 경로 위에 위치해 있는 사람은 어.. 더보기
인사 누구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누군가는 그 인사를 받는다. 또 누군가는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참, 이상한 표현이다. “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는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보면 인사를 해야 한다고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가르쳤던 사람들도 어디선가는 자신들의 말처럼 인사를 하고, 또 어디선가는 인사를 받고 있다. 이야기 초반에 말했듯이 그 관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우리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될 때가 있다. 그때의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에휴, 저 사람은 자존심도 없네.” 이것도 이상한 점 중 하나이다. 누군가의 인사를 고개 숙이는 사람의 자존심의 정도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그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누가 그런 것을 심어주.. 더보기
자급자족 “본인이 벌어서 먹고 살만해지면 인생이 단순해진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30대에”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말의 뜻을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먹고 살만하면 인생이 단순해진다.” 이 말의 의미는 아마도 고민 많은 10, 20대 청춘들에게 전해주는 말인 것 같다. 어쩌면 고민이 많다는 것이 미안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라며, 이제는 학교라는 곳을 조금 알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중고등학생이 되어버린다. 그 뜻은 무엇인가. 입시라는 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그마치 6년이라는 시간을 전장에서 싸우고 나면 어떤 결과를 받았건 허탈함과 함께 다시 한번 도전을 시도하거나, .. 더보기
확신 우리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맡을 수밖에 없는 역할들이 있다. 학교를 예로 든다면 크게 선생님과 학생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직장을 예로 들면 수많은 상사, 또는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상사인 본인, 가장 아래에서 이리저리 굴러가며 일하고 있는 본인이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통틀어 ‘일’이라고 칭하겠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한다. 선생님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또 다른 업무들을.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많은 이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일 것이다. 또한 직장에 있는 수많은 상사들은 자신이 그 위치에 대한 책임을 지며, 각자의 일들을 처리한다.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상사는 내려올까, 걱정하며.. 더보기
달빛 슈퍼문이 뜬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읽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달은 유난히도 컸다. 그래서 지금도 달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 그 달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달이 점점 작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그 큰 달을 다시 보고 싶었다. . 길을 나서니 날은 저물어 있었고, 내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달빛이 아닌 화려한 거리의 조명들이었다. 네온사인이 뿜어내는 그 아름다운 빛깔은 달빛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조명들 사이로 수줍게 모습을 내민 달이 보였다. 슈퍼문임에도 작아 보였다. . 옛날엔 화려한 조명도 없었고, 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