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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슈퍼문이 뜬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읽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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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달은 유난히도 컸다. 그래서 지금도 달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 그 달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달이 점점 작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그 큰 달을 다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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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니 날은 저물어 있었고, 내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달빛이 아닌 화려한 거리의 조명들이었다. 네온사인이 뿜어내는 그 아름다운 빛깔은 달빛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조명들 사이로 수줍게 모습을 내민 달이 보였다. 슈퍼문임에도 작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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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화려한 조명도 없었고, 아름다운 네온사인도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달빛에 의존해야만 했다. 어두운 밤을 비추는 것이라곤 달빛밖에 없었다. 달이 어둠을 비춰 줄 수 있는 전부였던 시절을 살아서인지 조명에 묻힌 달빛이 처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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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런 질문을 가졌던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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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낮을 환히 밝히는데 왜 달빛은 어둠을 환히 밝히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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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은 커가며 과학시간에 찾을 수 있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때의 전부였던 달도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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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달은 오는 기회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것들은 너무도 인위적이었다. 가로등도, 네온사인도, 모두 빛을 내려고만 했지 누구도 오는 기회를 활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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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요즘의 것들은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 화려한 가로등도, 네온사인도, 정형화된 틀 속에서 움직인다. 누구도 달처럼 모양을 바꾸려고 하지 않은 채. 어쩌면 달은 화려해져 가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달라는 요청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위상을 바꾸어 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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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단지 슈퍼문이 뜬다고 했을 때와 같이 잠깐일 뿐, 더 화려한 것들에 눈을 돌렸다. 어쩌면 슈퍼문도 평상시보다는 화려한 상태이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닿은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속물적이 존재. 나는 그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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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생전 처음 걸어보는 길을 걷고 있었다. 이곳엔 길을 밝혀주던 가로등도, 그 화려했던 네온사인도, 없었다. 그저 생각이 많았던 한 남자와 달빛이 마주하고 있을 뿐. 오직 달빛만이 환히 길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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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 의존해 길을 걸었다. 어릴 적, 달빛에 의존해 잃어버렸던 길을 찾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그땐 정말 식겁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이 달빛에만 의존해야 했으니. 그때 달과 친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 어둡고 험했던 길을 함께 헤쳐 나가야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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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보라보고 있으니 그때의 달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달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달은 어릴 적 그 모습을 회복한 듯 크고 밝게 보였다. 나는 달에게 온 신경을 기울였다. 어릴 적 길을 물을 때와 같이. 달은 내게 무언가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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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하지 않았다고. 단지 네가, 너희들이 변한 것이라고. 변해가는 것들 사이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때의 그 관심이 그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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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랬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달은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고 있었고, 여전히 오는 빛을 받아 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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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의 대화에서 새삼 깨달았다. 요즘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한때는 그것이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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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요즘이. 앞으로도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될 테지만 잃어버리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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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과의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었다. 달과 함께 천천히 걸으며 지금껏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굳이 길을 찾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걷는 그 순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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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길을 찾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걷는 그 순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테니까

달빛,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