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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이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했다는 말도, 윈스턴 처칠이 했다는 설도 있다. 누가 말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의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것은 현대가 삭막해졌음을 느끼기 때문일 수도, 그만큼 삭막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인지도 모른다. “아,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마.” “다 지난 걸 가지고 아직도 그러면 어떡하니?” 하지만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즉,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잊지 말자는 취지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좋은 일이었든, 그렇지 않았.. 더보기
안부 목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가 차오르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습관처럼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오늘 힘들지는 않았어?” “그때 말한 그건 조금 괜찮아졌어?” 목 끝까지 차오른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또 누군가 너무도 버거워 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럴 때면 우리는 목 끝까지 차올랐던 이야기들을 뒤로 한 채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들어준다. 우리 자신의 아픔을 뒤로한 채 말이다. 안부를 물을 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그 희생은 목 끝까지 차오른 우리네 이야기를 잠시 머금게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 안에 담는다. 털어놓기도 바쁜 순간에 우리는 그 이야기들까지 흡수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그거 들어주는 게 뭐.. 더보기
절실함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이야기한다. “절실함의 정도가 성공의 여부를 좌우한다.” 아마 절실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절실함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 대표 축구 선수로 선출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예산이 부족했는지 축구 유니폼을 주전들에게만 지급했다. 아니 어쩌면 돌려 입는 유니폼이었기에 주전들이 입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유니폼 관리는 당연히 주전들이 했다. 때는 시합 도중이었다. 전반전이 채 중반을 흘러가기도 전에 감독님은 선수 한 명을 불러들였다. 교체 사인이었다. 그 주전이 경기 당일 폼이 너무도 떨어졌던 까닭이다. 감독님은 나를 준비시켰다. 당연히 여벌 옷이 한 벌도 없었던 당시 상황으로선 미리 몸만 풀고 있다가 선수가 .. 더보기
아쉬움 우리는 많은 것을 아쉬워한다. 그 말은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개 아쉬움은 완벽과는 반비례 관계이다. 아쉬움이 다가오면 그 일에 있어서 완벽이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완벽히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을 바라왔던 성공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공들여 만들어낼 결과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과는 아쉬움을 동반한다. 그만큼 완벽에서는 멀어졌다는 뜻일지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목표를 세울 때 가장 이상적인 경우를 생각한다. 그것을 이루었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다. 하지만 일을 진행해 가다 보면 작은 부분에서 뒤틀림이 발생한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때로는 중심적인 부분이 삐거덕 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그에 맞는 수정을.. 더보기
우리는 미련함을 어리석음에 비유하곤 한다. “와 저 사람 진짜 미련하다. 어떻게 저걸 저렇게까지 하고 있지?” 이 한마디에는 그 대상이 어리석었음을 일컫는 뉘앙스가 스며들어 있다. 이것은 비단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련”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봐도 그러하다.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릴 정도로 매우 어리석고 둔함” “미련”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단 한 번도 찾아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연중에 사전의 의미대로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은 다르다. 미련함이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전적 의미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이렇다. “터무니없는 고집” “어리석음” “둔함” 한 문장에 좋지 않은 단어가 3번이나 들어간다. 단 한 문장에 말이다. 이 정도로 미련에 .. 더보기
인생 인생을 살아가며 하는 고민 중에 잘 풀리지 않는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인생에 관한 고민이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공감이 가는 질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인생을 고민한다니.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조금은 더 와닿을 것 같다. 수학을 풀면서 수학을 고민한다. 아까보다는 훨씬 와닿는 느낌이다. 우리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도 계속 고민한다. “이때는 어떤 공식을 대입할까.” “이 상황은 어떻게 풀어보면 좋을까.” “이건 생전 처음 보는 문제인데?” “이 문제는 도저히 못 풀겠어.” 등과 같은 많은 경우들이 있다. 어쩌면 인생도 수학 문제와 비슷한지 모른다. 살아가면서도 고민하고, 풀어내면서도 질문하는 모습이 우리와 너무도 닮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점 또한 유사하다. .. 더보기
미안한 사람 미안한 감정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다. 미안하다는 뜻을 대변하는 사람이 있다. 우린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수많은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만남과 이별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생긴다. 누군가에게는 악의 감정이 생길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애틋한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이렇듯 대개 사람은 그에 맞는 감정을 가져온다. 그런데 미안함 감정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대부분 그에 맞는 보답을 하지 못했거나, 과분한 것들을 받았지만 돌려주기는 내키지 않는 경우들이다. 그런 때에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미안한 감정이 그리 긍정적인 감정은 아님을 느꼈다. 미안함에 따른 유의어를 보아도 그렇다... 더보기
품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품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위치에 있으려는 마음 또한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무엇 하나라도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런데, 품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품으려는 상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 품으려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게 됨을 느끼는 경우 등 다양한 경우가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품으려는 상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 품으려는 사람이 그 사람의 앞에서 작아짐을 느끼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품을 수 없다.” “절대로 작은 물통은 많은 물을 담아낼 수 없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