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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

요즘은 옷에 얼룩이 묻더라도 어렵지 않게 지울 수 있다. 얼룩을 지우는 방법이나 용품이 많이 나온 까닭이다.

그런데 그리 오래 거슬러 가지 않아도,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런 도구 없이는 얼룩이 지우기 쉽지 않은지도 모른다.

 

옷에 얼룩이 묻는 것은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된다. 밥을 먹다 옷에 흘리거나, 국물이 튀거나, 아니면 남이 쏟는 무언가를 피하지 못해 옷에 스며드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한 가지 행동으로 통일되는 경우가 많다. 모두 그 얼룩을 지우려 안간힘을 쓴다. 얼룩을 지울 수 있는 도구가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해결하겠지만, 그것마저도 없는 사람은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로 향한 사람은 얼룩과의 씨름을 시작한다. 옷에 물을 묻히고 옷의 끄트머리를 잡고 서로 비비거나, 휴지에 물을 묻혀 옷에 얼룩을 지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비누를 옷에 발라 간단한 세탁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하더라도 옷은 얼룩이 묻었던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던 어느 날, 옷에 얼룩이 묻은 채 다니는 사람을 발견했다.

 

나는 지나가던 그 사람을 붙잡으며 말했다.

 

“저기, 옷에 얼룩 묻으셨어요.”

 

지나가던 사람을 그렇게까지 다급하게 잡았던 이유는 그 사람의 창피함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알아요.”

 

지나가던 사람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 짧은 대화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창피함으로만 여겼던 그 얼룩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어쩌면 옷에 얼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모든 것에 신경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그 사람을 보며 느꼈다.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자신만의 문양으로 만들지. 못다 지운 실수인 얼룩을 남길지는 본인의 몫이다.”

 

물론 실수에 대한 적절한 처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 처사를 한 후에는 그 문양까지도 자신의 색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옷에 묻은 얼룩을 자신만의 문양으로 상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부끄러워했던 것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우리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것인지 말이다.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을 자신만의 문양으로 만들지

한 번의 실수인 얼룩으로 남길지는 본인의 몫이었다.

얼룩,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