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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우리는 질투라는 감정을 느낄 때가 생각 외로 많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볼 때, 다른 이가 좋은 일로 남들의 입에 오를 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다정해 보이는 대화를 나눌 때까지.

 

우리의 삶에 침투해오는 그 감정은 가볍지만은 않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노력은 보지 않고, 현재의 그 모습만을 보고 그러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곳에 닿기까지의 과정은 보지 못하고, 과정의 결과만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고, 그 자리를 탐하는 것이다. 그 감정은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중점 두느냐에 따라, 다른 크기로 다가온다.

 

한 번은 누군가 이런 말로 고민을 상담해 온 적이 있었다. 본인이 홀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계속 이성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목격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왜 고백하지 않는가?”

 

그는 이렇게 답해왔다.

 

“알지 못했던 사람보다 더 멀어질까 봐”

 

분명 맞는 말이다. 한 번의 엉켜버린 관계는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70억이 넘는 사람보다도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나는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리도 자신을 믿지 못하느냐고.”

 

질투라는 감정은 대개 그렇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가지고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또 그 감정은 다른 이가 쌓아온 많은 것들을 깎아내리는 것을 불사한다.

 

하지만 고민 상담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분명 질투라는 감정은 ‘나’ 자신의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좋은 면보다 좋지 않은 면을 먼저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가지고 다른 이의 명장면과 비교하는 꼴이니, 당연히 질투하는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만 아는 나의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남들 앞에 보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모습을 가진 다른 이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체급이 다른 선수가 대결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다른 이가 잘 되는 모습을 보고 후려치고, 깎아내리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 줄 필요가 있다. 다른 이를 후려치는 것을 그만두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을 후려치는 것이다..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는지, 우리는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라지면 자연히 남을 대하는 모습까지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선일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반증하는 감정이 아닐까

질투, 김경민